양심적 병역거부 판결과 변화의 물길
물길은 세월의 변화에 따라 흐르던 방향을 바꾸기 마련이다. 대법원은 1일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가 병역법 제88조 제1항에 규정된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는 취지로 ‘무죄’를 판결했다. 오랜 기간 ‘유죄’라던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판결 흐름을 ‘무죄’라는 흐름으로 물길을 바꾼 것이다. 양심적 병역거부란 종교·윤리·도덕·철학적 또는 이와 유사한 동기에서 형성된 양심상 결정을 이유로 집총이나 군사훈련을 수반하는 병역의무 이행을 거부하는 행위를 말한다. 그간 찬성도 많았고 반대도 많았다. 하지만 이번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그 찬반에 결론을 내렸다.
판결문은 “피고인이 종교적 양심을 이유로 입영하지 않고 병역을 거부한 사안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병역의무 이행을 일률적으로 강제하고 그 불이행에 대하여 형사처벌 등 제재를 하는 것은 소수자에 대한 관용과 포용이라는 자유민주주의 정신에도 위배되므로 진정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라면 병역 제88조 제1항의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판결(2016도10912판결)하였다. 즉, 무죄라는 판결이다.
이번 대법원 판결의 쟁점이 된 병역법은 다음과 같이 규정되어 있다.
▲병역법 제88조(입영의 기피 등) 1항
현역입영 또는 소집 통지서(모집에 의한 입영 통지서 포함)를 받은 사람이 정당한 사유 없이 입영일이나 소집일부터 다음 각 호의 기간이 지나도 입영하 아니하거나 소집에 응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한편, 헌법 제39조 1항은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방의 의무를 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국방의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 헌법에 따라 규정된 병역법에 의해 국민이라면 병역의무를 이행해야 하고, 입영하지 않거나 소집에 응하지 않는다면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게 된다.
지금까지 병역법상 양심상 이유로 병역을 거부하여 형사처벌 될 경우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즉 재판에서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개별적인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채 병역법 시행령 제136조 제1항 제2호 가목에서 정한 전시근로역 편입 대상에 해당하는 1년 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대법원이 기존의 ‘유죄’ 입장에서 ‘무죄’로 입장을 변경함에 따라 진정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라면 실형 판결은 사라질 전망이다.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내면 영역인 ‘양심’을 이유로 병역을 거부한 것인지 아니면 병역기피자들의 도피처가 될 것인지 여부가 또다른 문제의 중심에 있다. 양심이란 보이지 않는 영역으로 그 남용의 가능성이 남아 있다. 이것을 객관적으로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관건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체복무 제도가 시급히 도입되어야 한다. 대체복무제도를 통해 양심상 이유로 병역거부하는 자들에게는 인간 본연의 양심을 지키도록 하되, 대체복무는 군복무 보다 쉬우면 안 된다. 그래야만 군입대를 회피하고 대체복무를 선택하는 현상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또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대체복무를 신청하는 경우에는 병무청에서 먼저 그 타당성과 정당성 있는 신청인지, 군입대 회피용인지를 선별하여 받아들이는 절차가 필요해 보인다. 이런 취지로 현재 입법안이 국회 소관위원회에 회부되어 심사 중이다.
이런 문제만 제대로 해결된다면 이번판결은 타당하다. 판결은 국민의 법감정을 담고 있다. 이번 판결은 자유민주주의의 정체성을 통해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바라보았다. 또한 세월의 변화를 따라 국민이 군사를 바라보는 태도도 함께 담았다. 법률은 세월의 물길을 따라 흐른다. 최근 제주도 귤 200톤이 북한으로 날아갔다. 남북이 정전 중에 있음에도 협력과 화해로 물길이 변하고 있는 것이다. 그변화를 따라 판례의 입장은 기존 태도를 변경하여 함께 흘러간다.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무죄판결을 기초삼아 내친김에 그 도도한 물길이 더 흘러가길 기대해본다. ‘군(軍)’를 바라보는 변화의 물결이 한민족의 가슴에 총칼을 더이상 겨눌 필요가 없는 평화의 한반도까지 끝없이 흘러가길 꿈꾸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