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료 낮출 권리 있다'..문제는 '죽은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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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료 낮출 권리 있다'..문제는 '죽은法'

법도강제집행센터 0 3181

#서울에서 북카페를 운영 중인 40대 A씨는 코로나19 여파로 매출이 평소보다 80% 이상 줄었다. 주 고객층인 학생들이 감염 우려로 발길을 끊어서다. 사태가 언제 정상화될지 기약이 없지만 매달 임대료 350만원을 내야 한다. 건물주는 두 달만 임대료를 내려달라는 요청을 단칼에 거절했다. 그는 “임대료 등 가게 운영비 마련을 위해 긴급대출을 신청했지만 요구하는 서류도 많고 심사도 오래 걸린다”며 “이대로 가면 곧 장사를 접어야 할 판”이라고 토로했다.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정부가 ‘사회적 거리두기’를 장려하면서 음식점은 물론 북카페, 목욕탕 등 다중이용시설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뉴스에선 고통 분담 차원에서 임대료를 깎아주는 ‘착한 건물주’ 미담이 종종 나오지만 그야말로 운이 좋은 사례일 뿐이다. 수많은 세입자가 임대료 부담으로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다.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은 이번 사태가 진정될 때까지 임대료 부담을 낮추길 바란다. 이에 일각에선 현행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이하 상가임대차법)에 규정된 ‘차임감액청구권’을 활용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하지만 모호한 규정 탓에 실제 적용된 사례를 찾기 어려워 ‘그림의 떡’이란 지적이 적지 않다.



법원 판례도 찾기 어려워…유명무실 차임감액청구권

상가임대차법 11조는 ‘차임 또는 보증금이 임차건물에 관한 조세, 공과금, 그밖의 부담의 증감이나 경제 사정 변동으로 인해 상당하지 않게 된 경우 당사자는 장래의 차임 또는 보증금에 대한 증감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31일 법조계에 따르면 현행 상가임대차법 11조에 규정된 차임감액청구권을 적용해 임차인이 임대료를 감면받은 사례는 최근 수년간 찾아보기 어렵다.

법원이 임차인의 차임감액청구권을 인정한 사례는 IMF 외환위기 직후 서울 강남권 상가건물에서 진행한 소송이 거의 유일하다. 당시 법원은 어려운 경기 여건을 고려해 임차인이 부담한 월 1000만원대 임대료를 16% 감면하라고 결정한 바 있다.

이번 코로나 사태를 예상치 못한 ‘경제 사정 변동’으로 해석하면, 임차인이 임대료를 낮춰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환경이 됐다는 주장도 있다.

전국가맹점주협의회 등 8개 단체는 지난 26일 서울시청 앞에서 진행한 기자회견에서 “임차임들이 법으로 보장된 차임감액청구권을 활용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현행법상 임대료 증액 상한선은 5%로 규정된 반면, 경영 악화에 따른 임대료 감면 기준은 명확하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영세 자영업자 소송 실익 낮아…시행령 등 법령 정비 필요

하지만 법조계에선 법이 정비되지 않는 이상 영세 자영업자들이 차임감액청구권을 활용할 실익이 낮다는 지적이 나온다.

엄정숙 법도 종합법률사무소 부동산 전문 변호사는 ”차임감액청구권을 근거로 한 소송은 전액 감면이 아닌 감면율을 다투는 문제여서 월 임대료 1000만원대가 넘는 고액인 경우에만 실익이 있다“며 ”월 임대료 200만~300만원대 세입자는 소송에 투입하는 비용과 시간 등을 고려하면 배보다 배꼽이 크다“고 했다.

세입자도 임대료 감면을 위해 건물주와 소송전까지 가는 것을 부담스러워한다. 소송 이후 받게 될 불이익과 재계약 어려움 등이 걱정되는 이유에서다.

때문에 이번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향후 전염병 확산 등을 임대료 감액청구 사유로 명시하고, 증액 한도처럼 시행령에 구체적인 감면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소송 대신 진행하는 행정구제 절차도 바늘구멍 


현실적으로 임대료 갈등은 소송보다 행정구제 절차를 밟는 경우가 많다. 서울시는 2015년 8월부터 ‘상가임대차 분쟁조정제도’를 운영 중이다. 변호사, 감정평가사, 건축사, 교수 등 30인 전문가로 구성된 조정위원회에서 임대차 계약 관련 다양한 갈등을 조정한다.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해 1만8085건의 임대차 분쟁조정 상담이 진행됐다. 하루 평균 70여 건 정도인데 계약해지(3338건) 임대료·보증금(2569건) 권리금(1840건) 등의 순으로 문의가 많았다. 실제 위원회엔 상담 건수의 1% 수준인 180건이 접수됐고 91건이 조정됐다. 대부분 상담 선에 그치고 속앓이를 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