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매매, 동시이행항변권을 아시나요
“건물을 산 사람이 돈을 늦게 주고 동시이행항변권을 주장하며 이자를 주지 않아요.”
민법에는 ‘동시이행의 항변권(同時履行-抗辯權)’이라는 것이 있다. 물건을 받기 전에 돈을 주지 않을 권리를 말하는 것인데, 부동산 거래계약에서는 건물을넘겨받기 전에 돈을 주는 것을 거절할 권리를 말한다.
마트에서 천원짜리나 만원짜리 물건을 살 때는 동시이행이 문제 되지 않는다. 수십만원짜리 옷을 살 때도 별로 문제 될 것이 없다. 하지만 수백억짜리 건물을 사고팔 때는 동시이행 시기가 문제 되는 경우가 왕왕 생긴다. 상황 변수가 많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는 금액이 크기 때문에 며칠만 지나도 이자또한 크다. 큰 이자 때문에 분쟁도 심화된다. 최근 필자가 다뤘던 소송사건도 비슷한 사례다.
서울 잠실에 위치한 건물 소유주 A는 임대사업을 접고 건물 전체를 여성병원업체 B에게 팔았다. 매도금액은 200억원대였다. 하지만 B는 잔금 150억원을 40일 가량 늦게 지급했다. A는 건물인도 의무를 다했는데 B는 제때 잔금을 입금하지 않았다. 적은 금액일 때는 이자가 문제 되지 않지만 100억원이 넘어가면 단 며칠만 지나도 지연이자가 문제 된다. A의 경우 40일이 지연되었기 때문에 이자금액은 1억6000만원이 넘는 금액이었다.
A는 잔금 지급에 대한 지체책임을 물어 지연이자를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B는 소송에서 의외의 주장을 펼쳤다. 동시이행항변권을 주장하며 잔금지급이 늦어진 이유는 자신 때문이 아니라 건물을 늦게 넘긴 A 때문이라고 항변했다. “건물을 늦게 넘겨받았으니 돈을 늦게 주는 것도 당연하다”는 논리다. 필자가 맡은 해당 사건의 실체는 복잡했다. 임대사업을 하던 매도인 A는 기존 세입자들을 모두 내보낸 뒤 B에게 넘기는 것을 조건으로 하는 매매계약을체결했다. 즉, A는 다수의 세입자를 내보내야 하는 명도책임이 있었다.
A는 자신의 의무인 명도책임을 다하기 위해 세입자들과 협상하고 내보내는 일들을 진행했다. 하지만 이 과정 중에 한군데 세입자가 쉽게 협상에 응하지 않았다. 이 세입자 때문에 B의 잔금 지급일까지 건물을 모두 비울 수 없는 상황이 예상됐다. B에게 이런 사정을 설명하며 잔금 지급기일을 연장하는 새로운 합의를 했다. 건물을 넘겨주고 잔금을 지급하는 날짜를 변경하는 새로운 합의가 이루어진 것이다. 지난 일이라 쉽게 설명하지만 당시로서는 매매계약 자체가 파기될 수 있는 아찔한 순간이었다. 이후, A는 새로운 기일까지 협상이 안 되는 세입자를 내보낼 전략을 구상했고 결국 거액의 보상금을 지급하고 건물에서 내보내는 데 성공했다. A는 합의된 잔금 지급 기일까지 부동산을 넘겨줄 수 있는 상태라 이를 B에게 알리고 잔금 지급을 요청했다.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잔금 지급일에 B는 잔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의무이행 할 준비가 완료되었음을 알리는 ‘이행 최고’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A는 ‘부동산을 인도할 상태가 되어 있으며, 등기이전에 필요한 서류도 모두 갖추어 법무사에게 맡겨 두었다’고 알렸다. 만약 이렇게수시로 알려주는 것 즉 이행최고를 하지 않았다면 B에게 지체책임을 묻기 힘들었을 것이다.
결국 40일이 지나서야 A는 B로부터 잔금 150억원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B는 원금 이외에 지연이자는 입금하지 않았다. A의 사건을 맡은 필자는 계약서에 있는 대로 ‘지연에 따른 약정이자 연 10%에 해당하는 1억6000만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에서 B는 자신이 늦게 잔금을 입금한 이유는 A가 건물 인도를 늦게 했기 때문이라 항변하며 동시이행항변권을 행사했다. 처음 계약을 기준으로 보면 거액의 보상금을 주고 내보낸 세입자 때문에 계약서에 적힌 건물 인도일 보다 훨씬 늦어진 것은 사실이다. B의 동시이행항변권 주장을 탄핵하기 위해 법률적전략구상이 필요했다. 필자는 잔금 지급기일을 연장한다는 것을 골자로 한 새로운 합의서에 주목했다. 또 부동산 인도 준비를 마치고 등기이전에 필요한 모든 서류를 법무사에게 맡겨 두고 이를 B에게 알린 사실도 주목했다. ‘새로운 합의서’와 이런 ‘이행최고’ 주장은 재판부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재판부는 A와 B사이에 잔금 지급기일 및 인도기일에 대한 새로운 합의서가 존재한다고 봤다. A가 자신의 인도의무 및 소유권이전등기에 필요한 서류를 모두 갖추었다고 해석했다. 또 B는 언제든지 이에 응하기만 하면 이전해 갈 수 있는 상태에 있었다고 봤고, B가 응할 수 있도록 A는 수시로 알렸다는 것을 사실로 인정했다. A의 주장이 모두 받아 들여진 것이다.
결국 재판부는 A의 손을 들었다. 동시이행, 즉 건물을 인도하고 잔금을 입금하는 시점을 새로운 합의서에 적힌 날짜로 판단했다. 물론 지연이자 1억6000만원의 지급도 명령했다.